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문단 편집) === 겐지의 대장군 === 1180년 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거병하자 이에 오슈에서 돌아와 후지가와 전투에서 막 헤이케에게 승리를 거둔 요리토모를 대면하고, 이후 겐지 군의 사령관이 되어 요리토모의 선봉에 선다. 한편, 헤이케는 겐지의 또 다른 세력인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또는 영지가 키소였기 때문에 '키소 요시나카'라고 불린다. 이 당시는 이렇게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성(姓) 말고 장원이나 영토의 이름을 딴 봉건사회식 묘지(苗字)가 등장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풀네임은 '키소노 카쟈 요시나카']에게 쿠리카라 고개 전투에서 참패하여 1183년 수도인 교토를 버리고 도주하였다(都落ち). 요시나카는 요리토모와 아슬아슬한 연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본인의 행정능력이나 정치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데다가 군기가 잡혀 있지 않는 야만스런 군대를 이끌고 교토에 주둔해 교토는 삽시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노련한 책략가였던 고시라카와 법황은 요시나카가 제 입맛대로 조정과 황가에까지 손을 뻗치는 것을 막으려고 하다가 요시나카에 의해 감금당했고, 요리토모에게 SOS를 보냈다. 요시츠네는 교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우미 근처까지 진군하여 이를 요리토모에게 하나하나 보고하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결국 요시나카는 요리토모를 제끼고 자기가 겐지의 수장이라 선언해서[* 문제는 겐지도 헤이지의 난 이전 호겐의 난부터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는 것. 호겐의 난때는 타이라노 키요모리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같은 편이었다. 요리토모의 아버지 요시토모는 요시나카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였기 때문에, 둘이 갈라서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요리토모를 적으로 돌리는 등 자폭에 가까운 짓만 되풀이하다 인심도 잃고 군대도 대부분 흩어진 상태에서 1184년 우지가와 전투에서 전사했고, 요시츠네는 교토에 입성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